*옥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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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쇄玉碎

一. 애꾸눈 친왕親王






연홍빛 치맛자락이 바삐 너풀거린다. 설천은 앞 선 이에 보폭을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으나, 여인 된 몸으로 사내의 걸음걸이를 쫓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를 포함하여 황후전 나인들과 호위군 모두 오직 한 사람만을 뒤따르기에 여념이 없다.




"왜 진작 고하지 않은 것이냐."


"폐하의 명이 있으셨기에 저 역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폐하를 황후전 뜰에 세워두었단 말인가."


"망극하옵니다. 소인들은 그저..."





문라文羅 머리띠에 무복을 간소하게 갖춘 사내를 분명 황후라 칭하였으니, 그는 현 황제의 정비인 소황후 경염이 되었다. 재빨리 뒤에 붙어 해명하는 설천의 만류에도 결코 속력을 늦추지 않고 발길을 재촉한다. 비록 황명이 내렸다고는 하나, 그것을 곧이곧대로 따른 설천과 보필 인력들이 마음에 차지 않는 듯했다. 황궁의 법도 지엄하고 황상의 명이란 거스를 수 없는 것이라. 사실 아랫것들을 책망하는 게 무의미한 일임을 알지만, 송구스런 마음에 도무지 태연할 수만은 없다.



경염은 여태 쥐고 있던 적색의 보검寶劍을 호위에 넘기고 처소로 들어선다. 내려트린 그의 흑색 옷자락이 문턱을 부드러이 쓸고 지났다. 과연 황후전 앞뜰로 황위군 소속 병사들과 태감 언추 등이 보인다. 그 가운데 남청색 상복常服 차림 황상의 모습이 확연하여 절로 고개가 숙여들 참이다. 경염은 그의 앞으로 나서 예를 갖추고 입을 뗀다.





"폐하. 어찌 기별도 주지 않으셨습니까."


"황후가 연무장 시찰에 나섰다 하여 방해가 될까 기다린 것입니다. 설천을 너무 나무라지 마시오."


"송구합니다. 처소에 납시었다 알려주셨다면 신첩이,"


"이리 한달음에 달려왔을 테니 함구토록 한 것이지."


"……."


"어떻습니까. 자태가 남다르지요."





퍼덕이며 허공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적갈빛 깃털이 눈앞을 어지른다. 황상은 여태 팔 위로 큼지막한 사냥매 한 마리를 올려둔 채 길들이기에 공들이고 있던 것이리라. 그가 친히 황후전까지 날짐승을 대동하여 온 것이 흔한 일은 아니었다. 경염은 황상의 배려심에 감사를 표한 뒤 그의 곁으로 좀 더 다가선다.


낯선 이를 발견한 사냥매가 고개를 좌우로 비틀며 눈을 깜빡인다. 부리는 매섭게 휘어들어 움직거리고, 비단을 꽉 움켜쥔 발톱 역시 시선을 압도하기에 모자람 없다. 경염은 건네받은 먹이를 들고서 가만히 손을 내민다. 눈을 껌뻑이던 매가 순식간에 그것을 낚아챘다. 손끝에 스친 매끈한 부리의 감촉이 생생하다. 





"녀석은 황후가 마음에 드는가 보군."


"저 역시 양梁에 있을 때부터 매를 아꼈지요. 영특하고 용맹스러운 짐승 아닙니까."


"그렇다면 더더욱 다행이오. 이제 황후가 이 녀석을 훈육해야 할 테니."


"신첩이 말입니까?"


"짐이 황후에게 내리는 선물입니다. 다루기 힘든 녀석은 아니니 정을 붙여 보세요."


"황은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리 갑작스럽게.."


"그대가 차마 다 밟지 못하는 대 북연의 영토를, 녀석을 통해서라도 굽어보면 어떻겠습니까."





그제야 매를 이끌고 온 황상의 진의를 파악하여, 경염은 조용히 눈을 내리깔고 말을 아끼었다. 양梁의 황자이자 군왕으로서 보낸 나날이 결코 짧지 않다. 비록 음기를 태생으로 지녔다고는 하나, 경염은 정왕부靖王府를 이끌던 수장이자 싸움터를 휘젓던 무관이기도 했다. 말 타고 검을 수련하던 기상이 북연으로 왔다고 하여 순식간에 사라질 수는 없을 일이다. 그것을 잘 알고 있을 황상은 정비로서의 품위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경염이 원하는 바를 충족시켜 주려 나름의 배려를 지속했다.



방금 연무장으로 들어 황위군의 훈련을 시찰한 것 또한 같은 맥락이었다. 황후가 친히 연무장 출입을 했던 전례가 없어 이를 반대하는 대신들의 간언이 줄을 이었으나, 황상은 그들을 설득하여 경염의 연무장 시찰을 윤허했다. 비록 직접 병력을 지휘하거나 출정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 되었다 하여도, 그 정취라도 느낄 수 있게끔 노력한 결과였다.



두 사람 화친혼和親婚으로 맺어진 부부지간이라 하여도 서로에게 내려진 책무와 예를 다하려 충실한지 오래다. 이는 천정연분天定緣分과 같이 애틋한 정은 아니나, 각자의 최선으로 배필을 아끼고 신의를 지키려는 동지애라 하겠다. 




"이름을 지어야지요. 황후가 직접 말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알아듣기라도 한 것인지, 얌전히 팔 위에 앉아있던 매가 커다랗게 날개를 펼친다. 유선형의 몸통 양옆으로 드넓게 이어진 양 날개. 반점과 흰 솜털이 얽힌 안쪽의 자태 바라보던 이가 마침내 답을 내놓았다. 




"진振이라 칭하겠습니다."


"맹위를 떨치고, 이 대지를 흔들어 놓겠단 포부인가."


"해석이 너무 거창하십니다."


"진이라...아주 좋은 이름입니다."




뒤를 지키던 군졸에게 매를 넘긴 뒤, 황상은 이곳에 조사鳥舍를 새롭게 지어 황후가 살펴볼 수 있도록 명을 내린다. 이윽고 뜰을 벗어난 두 사람은 나란히 걸어 처소 안으로 향했다. 붉은 기둥 줄지어 늘어선 길을 밟으니 오로지 두 내외의 발소리가 사방을 채운다.





"연무장 시찰은 만족스러웠습니까."


"지난겨울 원정의 여파가 남아있는 듯하니, 병사들의 기력을 증진하는 데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변경에서 돌아온 이들의 비웃음을 사지 않으려면, 기강이 해이해지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겠군."


"변경이라 하심은..."


"모천芼穿과의 접경지대 말입니다. 황후는 아는 것이 거의 없을 테지요."




경염은 걸음을 늦춘 채 황상을 바라보았다. 모천국과의 접경지대라. 북연의 궁에 들어 태자비에서 황후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약 네 번의 해를 보낸 차였다. 모천은 멀기만 한 이국의 땅이자 아는 바가 없어 이름만 알아둔 것과 같다. 접경지대마다 신임이 두터운 자를 숙고하여 파견하였으니, 오래도록 변경을 지킨 이라면 필시 황상의 총애를 받는 이가 아닐까….




"철기군 같은 경우 척박한 곳에서 오래도록 책무를 다하였으니, 공을 치하할 겸 환궁을 명했습니다."


"그랬군요. 신첩 변경의 일까지 헤아리지 못해 송구합니다."


"황후가 마음 쓸 일은 아니오. 아마 수일 내로 철기군이 돌아올 겁니다."


"국위에 충정을 다했으니 환대에 모자람이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지금은 그보다 더 중한 사안이 있지요."




발길을 이어가던 두 사람이 멈춰 선다. 슬며시 손을 잡아낸 황상은 침전 입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황상이 보다 힘주어 팔을 이끌고, 머지않아 문이 열려든다.




"짐이, 오늘 밤은 황후의 처소에 머물 생각이오."





⁂ ⁂ ⁂





깊은 밤 알리는 보시報時가 아득히 울려 퍼진다. 작은 손짓에 황촉이 수초와 같이 헤엄치니, 실은 금침 위 누운 사내의 움직임에 따른 것이다. 경염은 살갗이 드러나는 침의 차림이 불편했던지 슬며시 몸을 돌려 누우며 황상을 등지려 했다. 속내를 짐작한 황상이 벗어 두었던 용포를 끌어와 움츠린 몸 위로 얹는다.



"추운 겁니까."


"그럴 리 있겠습니까. 잔약한 여인들도 추위를 떨친 지 오래입니다."


"그렇지. 이젠 봄이 되었지...."




땀 젖어 흘러내린 머리칼을 넘기고, 드러난 뒷덜미에 입술을 묻는다. 황상의 팔이 뒤에서 다가와 허리를 감싸자 두 사람의 몸이 좀 더 밀착된다. 천장을 보고 누운 채 황상과 교합한 게 조금 전 일이니, 몸은 아직도 열기를 식히지 못하고 향긋한 살 내를 풍기었다. 체액을 덧씌운 채 말라가는 둔부와 허벅지. 소리 없이 흘러든 손길이 은근하게 그곳을 문질러댄다. 으음- 어깨에 콧날을 기댄 사내가 낮은 목울음을 내자, 경염은 잠자코 황상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파정을 마친 옥경玉莖이 몸에서 빠져나간 후에도 한동안 자세를 바꾸지 못하였다. 황상의 정精이 몸 깊숙한 곳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황궁 지밀의 비책이었으니, 사내 된 마음으로 거북하더라도 따르는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 경염이 체위를 바꿔낼 때까지 황상은 곁을 지키며 그의 복부의 손을 올려두곤 했다.





"예황군주의 탄생일이 이맘때쯤 아니오?"


"맞습니다. 기억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운남왕부에 하례품을 전하라 일러야겠군."




등 뒤로 울리는 음성 평소보다 축축하고 낮은 구석이 있다. 잠자리에 임한 황상은 그 어느 때보다 진중하여 평소의 장난기 많은 모습 찾아볼 수 없으니, 사내로서의 본능인지 일국 황제로서의 중한 책임감인지 명확지 않다. 분명한 것은 그동안 이뤄졌던 수많은 합궁 중에 그가 허투虛套를 꾸며 임한 적은 한순간도 없다는 점이다. 


황상은 어깨에서 멈추지 않고 능선처럼 퍼진 윤곽을 따라 목 이음새까지 입술을 옮겼다. 뜨겁고 아찔한 느낌에 저절로 목이 움츠러들자 작게 웃음을 낸다. 그는 새까맣게 늘어트린 경염의 머리칼이 퍽 마음에 드는 듯 손을 떼지 못하기도 했다. 둔부 사이로 여즉 숨 죽지 않은 양물이 닿고, 황상이 복부와 그 아래 살갗을 조심스레 어루만지자 의도가 분명해졌다. 황상은 금일 한 번의 잠자리로 만족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연왕군鳶王軍의 위세가 황후의 마음을 사로잡을지도 모르겠어."


"..연왕, 군..."


"연왕의 철기군은 아마 운남왕부의 군대와 비교해도 못지않을 겁니다."


"폐하, 흣..윽...! 잠...ㅅ..."


"그 이가 내 아우라오."




두 다리 꼭 붙어 음영진 골짜기. 거웃이 웅그린 곳까지 얽힌 손이 양물을 쥐고 힘을 주자 옅은 신음이 뒤따른다. 아우를 칭하며 귓바퀴를 깨무는 사내 덕에, 경염이 고개를 젖힌 채 금침을 세게 쥐었다. 얼결에 뒤를 돌아보자 황촉을 등진 이가 기다렸다는 듯 입술을 빨아대기 시작했다. 


연왕. 황제의 아우. 모천 주둔의 철기군….

미지의 실타래가 한 올 한 올 얽히더니 두르르 풀려든다. 모로 누워 뒤채는 황후의 몸을 꽁꽁 묶어 죄는 것이었다. 몇 해를 거치며 북연에 뿌리를 내렸다 생각하지만, 결국 황상의 뒤로 풀리지 않은 실타래는 아직도 셀 수 없다. 타국의 황후를 귀애하여 모든 걸 내어주는 듯하나,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 소황후, 소경염. 여태껏 황상의 친형제조차 알지 못하였단 말인가.




"황후. 어찌 그런 서글픈 표정을 짓습니까."


"으-으응...윽,흐.."


"아우를 소개해주지 않아 서운한 것인가."




바삐 고개를 내젓느라 경염의 머리카락이 결결이 흩어진다. 훅 끼쳐오는 짙은 체향에 정신이 나가버릴 것만 같아, 막무가내로 황상의 팔뚝을 움켜쥐고 매달리는 형상이 되었다. 쉬이- 아이를 어르듯 다정히 구는 품으로 날개뼈를 부비고 애타는 숨을 내뿜는다. 




"짐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소. 그러니...."




펄펄 끓는 신열에 취해 발작하듯 몸을 퉁기었다.



부디, 황후는……나를…

연왕은…짐의……그,림ㅈ……………



황상의 음성이 맴맴 돌아 귀를 감싸는 것만 같다. 경염은 다가온 목덜미로 손가락을 얽고 한사코 떨어지지 않았다. 웃음소리가 침전을 그득히 메운다.




⁂ ⁂ ⁂




황상 내외는 순백색 제복祭服을 갖춰 입고 전사한 이들의 넋을 기리는 뜻을 담았다. 황궁으로 진입한 철기군을 실제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니, 경염은 황상의 곁에 좌정하여 상기된 표정을 숨기지 못하였다. 수천 명의 본대가 마치 한 사람인 것처럼 정연한 탓에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도록 할 참이다.


부관들과 함께 선두를 지키던 사내가 말에서 내리고, 곧 중앙으로 자리해 상단을 우러른다. 환궁을 명한 황제 내외에 대한 예를 갖추기 위함이리라. 두 손 굳건히 포갠 자태는 절도를 갖춘 동시에, 울려 퍼지는 음성 궁내를 온전히 울릴 만큼 깊이가 있었다.





"신臣, 연왕. 황제 폐하를 뵈옵니다. 변경을 호전護全하란 황명을 수행하고 환궁하였습니다."


"나라를 위한 연왕의 충정이 용렬하구나."


"폐하의 황은을 입어 무사 귀환하였으니, 이를 갚을 길 없습니다."


"가까이 들라."




단 아래 부복한 이를 부른다. 검은빛 주단 깔려든 층계를 하염없이 밟아 올라, 연왕이 조금씩 가까워졌다. 수 년 만에 대하는 아우를 반기기라도 하듯 황상의 얼굴로 온화한 미소가 깃든다. 망토를 휘날리며 황제와 황후의 지척으로 당도한 사내였다. 시선이 마주칠 만큼 좁혀진 거리에, 황후는 뒤늦게 경탄하였다.




"아우의 자리를 너무 오래 비워두었어. 내 마음이 좋지 못하구나."


"당치 않습니다. 사내 된 도리로, 황가의 구성원이자 폐하의 신하로서 국위에 보탬이 되어 크나큰 영광입니다."


"그래. 황후와는 오늘이 첫 대면이겠구나."


"소신 변방의 일에 파묻혀 지내느라 혼례식에도 들지 못하였습니다. 송구할 따름입니다."





매의 날개처럼 곧게 뻗은 장수의 미모眉毛. 태산처럼 솟은 콧대와 그윽한 입매가 황후를 향한다. 투구를 벗지 않은 사내의 얼굴을 마주한 뒤, 경염은 입을 떼지 못하고 당황한 듯 두 형제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왼쪽 눈으로 자리한 흉측한 상흔. 이미 오랜 세월을 견딘 듯 붉은 빛은 서서히 지고, 갈빛의 사선이 사내의 눈두덩을 베었다. 온전한 나머지 눈동자가 거칠 것 없이 여기를 관통한다 느낀다. 경염이 주먹을 꽉 쥔 채 간신히 입꼬리를 올린 순간이다.





"황후마마. 인사 올립니다. 이리 환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모천의 접경지대를 책임지신다 들었습니다. 나라가 평안한 것도...연왕 전하의 덕입니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연왕은 황상이 아니다. 

그는 황상의 아우일 뿐이다. 단지, 단지…….




"황후는 놀란 것 같군. 아닙니까?"




연왕은…짐의……

그,림ㅈ……………




"신첩은 그저..."


"양梁의 황실에서도 이런 경우는 없는 것으로 압니다만."




봉황 단청, 황후의 침전. 열락에 물든 사내의 음성이 계단을 기어오른다. 시작되는 일몰을 빌미 삼아 그림자가 옥좌를 물들이고 있었다. 경염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황상의 얼굴이, 황상의 얼굴을 바라본다.




"내 쌍생雙生 아우. 연왕입니다."







그렇습니다. 북연의 황제는 쌍둥이여요 하하흐하흐하하핳....

풍겨오는 앵슷함이 늑겨지시나혀..(쓰렉쓰렉

비로소 1화로 운을 뗍니다. 황샹의 침전 이야기는 담편에서 보다 자세하게~_~

프롤로그를 짤막하게 썼었는데 생각보다 관심 마니 주셔서 기뻤습니다 ㅠㅠㅠㅠㅠㅠㅠ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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