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玉

쇄碎




- 전문前文 -






어갑국禦甲國과의 접경지대가 한층 안정을 되찾았다 하니, 과연 금일의 시찰 마치고 돌아온 용안에 흡족함이 깃든다. 황위군이 궁으로 들어서자 말들은 저마다 콧김을 뿜으며 걸음을 놀리고 병사들은 일사불란하여 한치의 해이함도 찾을 수 없다. 대 북연北燕의 위용이란 계절을 막론하며 한동안 쇠퇴하지 않으리라.




"황후의 용태 어떠한가."


"오수午睡에 드셨다가 두 시진 전쯤에 깨어나셨습니다."


"다른 문제는 없단 말이겠지."


"예. 그러하옵니다 폐하."




선황제께서 붕어崩御하신 뒤 태자가 옥좌에 오르니 이후로 그 강대함이란 힘을 더하는 중이다. 말에서 단숨에 뛰어내린 사내는 흑색과 황동색이 어우러진 갑주를 갖추었다. 황상의 투구는 사방을 돌아 채색된 흑룡이 활개 치고, 정수리 부분으로 검은색 술을 늘어트려 위려偉麗함을 떨치는 것이라. 그를 맞은 태감 언추가 가깝게 붙어들어 소식을 전하니, 군장을 채 풀지 않은 채 발걸음은 황후전으로 향하게 되었다.


황후께서 병중이란 소식 좀처럼 들려온 적 없음에도 두 사람의 표정은 묘한 긴장감을 심어 놓았다. 태감 언추는 잠룡潛龍시절부터 황상을 보필해 온 인물이었기에, 시시각각 그의 마음을 헤아려 섬기는 데 모자람이 없었다. 황후전 뜰에 이르기까지 그저 묵묵히 황상의 뒤를 지키되 온화한 미소를 끝내 유지하며 황상을 안심시키려 노력하였다.



"됐다. 조용히 들겠다."



황상의 행렬 발견한 나인들이 앞다투어 부복하고 이를 고하려 하였으나, 손으로 물린 후 처소 안으로 들어선다. 아직 일몰 전이라 금빛 해울음이 물든 처마. 바람결에 풍경風磬이 춤추며 그를 맞는다. 처소는 향긋한 꽃내음이 감돌아 색다른 흥취를 풍기었다.


황후전 나인 설천이 반색하며 황상을 맞이했다. 불 밝혀진 처소 안으로 갖가지 꽃이 그득 쌓여있고, 그 등성이를 타고 하얀 얼굴이 어른어른 눈을 간질인다. 물러난 설천을 등져 앞으로 나서자 여태 꽃줄기를 쥐고 흠씬 취해있던 이가 비로소 눈길을 주었다. 황후는 큼지막한 화병에 꽃을 옮겨 꽂느라 오랜 시간 공을 들인 듯하다. 툭 하니, 쥐고 있던 삼각매三角梅 줄기를 놓친 바람에 무릎 위로 추락한다. 





"황후. 삽화插花를 하고 계셨습니까."


"네. 네...폐하! 황후는...꽃을..."


"황후는 내가 그대를 부르는 호칭이니, 신첩이라 자신을 칭해야지요."


"...신첩."




황상은 무릎맡의 꽃을 집어 황후에게 다시 쥐여주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우러르던 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읊조리자, 기특하다는 듯 그의 눈썹과 턱선을 쓸어준다. 두 내외의 모습 지키던 설천이 내실 밖으로 물러나 문을 닫았다. 온전히 두 사람만 남게 되어 황상의 표정은 보다 다감히 물들고, 곧 무릎을 굽히어 몸을 낮추기도 했다. 엉거주춤 앉아있는 황후의 눈높이와 시선이 맞닿는 순간이다.


가까이 다가온 사내가 쉬지 않고 저를 바라본 탓일까. 황후는 커다란 눈망울을 이곳저곳 바삐 움직이며 어쩔 줄 모르더니 한숨을 작게 내쉰다. 손목을 잡힌 채 애꿎은 꽃줄기에 손톱을 긁기도 했다. 황상이 입꼬리를 올려 웃자, 뒤늦게 안심한 듯 따라서 미소를 내보인다. 미약하게 솟은 복부 위로 손길이 흘렀다. 




"오수에 들었다가 깨서 울지는 않았구요."


"안 울었다..소경염."


"짐을 찾지는 않았소?"


"……."


"나를 봐야지요. 경염."






얼굴을 내젓는 이 장성한 지 오래라 복중 태아까지 품었으나, 정작 예닐곱 살 어린아이의 지능으로 평생을 살아가게 되었다. 경염이라 이름을 부르자 축 내려들었던 눈두덩이 바르르 떨리며 번쩍 뜨인다. 눈꺼풀 안으로 생동하는 연갈빛 눈동자. 한때 그 누구보다 총명하게 빛을 발하던 사내의 것이다. 황상은 그의 팔목을 이끌고 침상으로 향했다. 황후는 얌전히 뒤를 따라오더니, 이끄는 대로 황상의 허벅지 위 덥석 자리를 잡고 앉는다.

 


시찰한 지대가 척박하기 이를 데 없고 한풍이 끊이질 않으니, 사실 황상의 존안尊顔은 흙먼지가 미미하게 묻어났다. 그럼에도 경염은 무언가에 홀린 듯 감히 황상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데 거리낌이 없다. 암연하게 가라앉은 눈 이음새, 기개를 그대로 옮긴 것처럼 솟아있는 콧대. 그리고 다물린 황상의 입술로 손가락이 넝쿨을 뻗는다. 황후는 저가 뭐라고 중얼대는지도 모르는 것만 같았다.




"연,ㅇ..."


"……."


"눈이 아파...여,기."




아랫입술을 지그시 눌러대던 엄지가 조금씩, 조금씩 위로 오른다. 왼쪽 눈썹 아래를 찔리다시피 한 황상은 한동안 표정을 숨기지 못하였다. 날 선 눈길이 천진한 황후를 좇고, 그이의 속마음을 간파하려 골몰하는 것과 같다. 허나 말을 뱉은 이 정작 한 점 오구汚垢 없이 청진할 뿐이니 파헤치려 했던 이가 죄스러울 뿐이다. 아끼어 달래던 옥玉을 파쇄한 이 누구던가. 


이 또한, 

깨트린 이의 업보가 아닐런가….




"경염."


"응."


"연왕鳶王이 그립습니까?"


"……."


"답을 주시오. 연왕을 기억하는 거요?"


"모릅니다...몰라요."




미간을 찌푸리면 무언가를 깊이 고심하는 사내의 모습이다. 처음 북연으로 들었던 때와 달라진 것 하나 없어, 황상의 심중이 더욱 어둡게 가라앉았다. 자꾸 시선을 마주하려 버티는 걸 알아챘을까. 경염은 곤혹스러운 듯, 아예 황상의 품으로 얼굴을 묻어버린다. 아이처럼 투닥대는 손가락 끝으로 꽃향기가 여전하다.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황상 역시 눈을 감는다.



"신첩, 연왕...모릅니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그대의 빛 나를 떠난 것 확실하구나.



"고맙소. 황후."



황후의 회임 공표 넉 달이 지났다.







옥玉
쇄碎


  옥처럼 아름답게 부서진다는 뜻으로,

공명功名이나 충절忠節을 위하여 깨끗하게 죽음을 이르는 말




 






프롤로그입니다. 현재의 이야기지요!

1편부터 멀쩡하고 용맹했던 소경염의 과거가 나옵니다.

가상설정 많을 예정이고 

음애가 넘 어두운 내용이어서 이번 연재는.........

더 어두운 내용으로^^(병자



8-9편 정도 될까요?

흨흨 읽어주신 분들 감사해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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