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든 날이 있었다. 명공관 지붕이 날아가 버리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어린 소년이 큰 눈 뜨고 사람구경을 실컷 했던 날이었다.



"우리 명대. 생일이니 소원을 빌어야지?"



작약 무늬가 수놓아진 치파오. 명경의 자줏빛 치맛자락이 살랑인다. 옷과 꼭 같은 색 귀걸이를 착용한 여인이 품에 안아들고 물으면, 명대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끝도 없을 소원 목록을 내놓았다. 축포가 끝도 없이 터졌고 사람들은 하나같이 웃는다. 음식과 장식꽃이 뿜는 냄새가 한 데 뒤섞여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명대가 입고 있는 붉은 색 예복은 퍽 오랜 시간 공들인 것 같았다. 정작 본인은 불편한 듯 긁적이며 자꾸 엉뚱한 곳을 응시하지만, 그러면서도 정성스레 들이민 장수면은 두말없이 받아먹는 성의를 보였다.

아성은 명경과 명대. 그리고 곁의 명루보다 서너 발자국 정도 떨어진 곳에 조용히 서 있었다. 어지간해서 큰 소릴 내지도 않고 눈에 띄게 움직이는 것도 하지 않았다. 그랬다가 다시 어미가 나타나서 잡아가면 어쩌지, 이런 생각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닌 탓이다.



잠들기 전에 세 번 씩 되뇌고 자는 걸 잊지 않았다. 


빨리 생일이 오게 해주세요.

빨리 생일이 오게 해주세요.

빨리 생일이 오게 해주세요.


꿈속의 아성은 장수면을 원 없이 먹고 있다. 주변에 모인 사람들의 박수와 함성 탓에, 정작 가족들의 축하인사가 잘 들리지 않는다.  



.

.

.



저녁 공부도 끝났고 밥까지 먹었는데, 정원이 조용하다. 창가에 한참 서서 밖을 바라보던 아성은 그곳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까지 했다. 아마 명경의 눈에 띄었다면 꾸중을 들었을지도 모르는데, 오늘따라 명공관은 조용하기만 하다. 물건을 잔뜩 실었던 배가 뒤집혔단 전화를 받고, 명경은 눈썹이 팔八 자가 되어 점심 전에 명공관을 나섰다.


명대가 감기 증상으로 입원한 지 이틀째였으니까, 명경 누님이 하루종일 화난 표정을 하고 있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식탁에서 아성은 생각했다. 새 옷과, 꽃향기, 모르겠는 사람들은 필요치 않으니 누군가의 품에 안기고 싶다고 말이다. 



"이대로 잠들었군요...아뇨. 제가 데려다주죠."



동그란 화점이 피어난다. 점점 커지더니, 펑-펑─ 터지는 폭죽이 되었다. 신이 난 아성이 펄쩍펄쩍 뛰며 소리를 질렀다. 누가 피운 불일까? 누가 심어준 폭죽일까? 주변을 휘휘 둘러보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이 서서히, 껌껌하게 숨죽는다. 폭죽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발아래로 뭉글뭉글 파도가 친다. 아성의 몸이 붕 떠서 찰랑이고 있었다.


이마로 깃털 같은 숨이 조금씩 얹힌다. 어둑했던 눈가가 물 먹는 솜처럼 조금씩 빛에 젖어버려, 얼결에 눈을 떠버렸다. 코트를 벗지 않은 남자가 복도 중간에 우뚝 멈춰 선다. 깨어버린 아성을 내려보고 눈인사를 한다. 




"밖에서 잠들면 감기 걸린다. 명대를 봐서 알지 않아?"


"명루 형님. 나 꿈꿨어요."


"좋은 꿈을 꾸는 것 같던데."


"오늘은....사람들이 안 오겠죠?"


"……."




명루는 뜻밖이란 표정으로 한참동안 여기를 쳐다본다. 그리고는 아성의 침실이 아닌,  안쪽의 방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명루 형님의 방이구나. 잠결에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명루가 걸을 때마다 손목에 걸린 중간 크기의 종이봉투가 앞뒤로 흔들린다.


아성은 그가 내려줄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방에 불을 올린 명루가 비로도 소파에 저를 걸터앉히고, 맞은편에 자세를 낮춰 앉는 순간까지도 한마디를 안 한다. 입을 꼭 다물고 그가 하는 걸 지켜보기만 했다. 아직 잠기운이 덜 풀린 눈망울인데도 맑고 깊다. 잠시 망설이나 싶던 명루가 옆에 놓였던 봉투를 개봉하기 시작했다.




"이곳에 와서 첫 생일인데,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해."


"괜찮아요."


"누님은 회사 일 때문에 오늘은 들어오지 못하실 거다. 나도 명대에게 가봐야 하고. 아성. 이게 마음에 들지는 모르겠지만...."


"명루 형님."


"그래. 아성."


"저는.....이곳에 계속 있을 수 있나요?"




노란색 사각 상자에서 신발을 꺼내던 남자였다. 눈을 크게 뜨더니, 혼난 사람처럼 아성을 올려 본다. 아성은 저 표정을 알고 있었다. 변명할 수 없거나 숨겼던 일을 들켰을 때, 저가 꼭 저런 표정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온다. 명루가 말없이 포장을 벗기고 신발 한 짝을 가져왔다. 무두질해서 아주 부드러워 보이는 검은색, 가죽 구두였다. 신발은 명루의 두 손 크기보다 좀 더 작다.


아성의 오른쪽 발목을 잡고, 신을 신겨준다. 끈을 하나하나 엮어 정성스레 묶어주었는데도 조금 컸다. 이리저리 살펴본 명루가 멋쩍게 미소를 짓는다.




"조금 크구나."


"제가 빨리 자라면 맞겠죠?"


"그래."


"그러니까, 미안해하지 마세요."


"아성, 여기는....."




어느새 아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남은 신발을 집어든다. 명루가 신겨줄 것 없이, 알아서 제 신발을 챙겨 신는 중이었다. 그 옆에 가만히 주저앉은 명루가 목을 가다듬는다. 어린아이 손에서 서툴고 엉망으로 엮인 신발 끈을 다시 풀고, 처음부터 꿰어준다.




"이곳에는, 언제까지고 있어도 좋다. 네가 원한다면."


"감사합니다."




꾸벅 허리 숙여 인사하던 아이와, 신발을 신겨주던 청년이 이마를 서로 찧는다. 쿵 소리가 울렸지만 누구 하나 쉽게 웃지 못했다. 어쩐지 울상이 된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명루는 좀처럼 그 발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다음번엔 꼭 알맞은 것으로 사다 주마."








─ 1940年, 상해上海





차가 멈춰섰을 땐 이미 명공관 대부분의 불이 꺼진 상태였다. 예정에 없던 호위 임무가 맡겨져 왕복으로 한 시간 넘게 지체된 것 같다. 하차한 아성은 베이지 컬러의 롱코트 안으로, 같은 계열의 3pcs슈트를 갖춘 모습이다. 날이 아직 쌀쌀한 탓에 걸음을 재촉한다. 입김이 고스란히 피어나는 정원을 가로질러 실내로 들어선다.


최대한 기척이 들리지 않도록 층계를 오른다. 모두 잠든 시간일 테니 방해되지 않는 게 편하다. 장갑을 벗고, 코트에서도 한쪽 팔을 빼냈을 때였다.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에 몸을 돌린다. 




"안 주무셨습니까?"


"들어오는 소리가 좀 커야지."


"그럴 리가요."




입구에 회색 카디건을 받쳐입은 명루가 서 있다. 농담을 스스럼없이 건네며 대하지만, 불과 며칠 전 생모인 계이의 일로 한 차례 논쟁을 벌였기에 아직도 맘이 편치 않다. 안 그래도 그 일로 사과를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하던 차였는데, 명루가 먼저 이 방을 찾았다. 더군다나 한 손에 의문의 꾸러미를 들고서. 




"이게 뭡니까."


"뭐긴. 선물이지."


"선물이요? 어디 시키실 일이라도,"


"네 것 말이야. 이 답답한 녀석아."


"저요?"


"설마, 설마 너 오늘 생일인 것도 잊은 거냐?"


"아아."




아성이 짙은 눈썹을 찡긋대며 이마로 말아 쥔 손을 가져다 댄다. 도통 잊고 있었다는 듯 구는 바람에, 오히려 이쪽에서 기막힐 노릇이다. 명루는 혀를 차며 핀잔 주더니 손수 선물을 꺼내 얼굴 앞으로 들이민다. 




"대체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냐. 응? 제 생일도 못 챙길 정도로 내가 독하게 부려먹는단 소릴 듣게 하려고?"


"본인 생일 못 챙기시는 건 형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어서 풀어보기나 해 봐."


"형님 안목이야 늘 인정하는 걸요."




답하면서도 어딘가 쑥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못한다. 명루가 목을 슬쩍 빼고 지켜보는 바람에 안 풀어 볼 수도 없었다. 프랑스어로 로고가 인쇄된 박스. 그 안으로 브라운 톤의 세련된 신사화 한 켤레가 들어 있다. 아성의 눈동자가 스탠드 빛을 반사하며 검게 윤을 낸다. 어쩐지 명루는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다. 


그가 먼저 꺼내보기도 전에, 명루는 손수 구두를 집어들고 발치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한사코 말리는 몸을 소파에 앉힌다. 




"지난번에 보니 구두가 낡았더군."


"제가 하겠습니다."


"내가 해주마."


"……."


"이번엔 아주 잘 맞을 거야."




명루는 접어올린 제 허벅지 위로 발을 올려둔다. 그참이 민망하고 불편해 어쩔 줄 몰랐지만, 발목이 잡힌 중이라 이도 저도 하지 못했다. 그가 거침없는 손길로 발목이며 발등을 만지고선 '이전보다 말랐군.' '발등이 이렇게 높았나?' 등등의 말을 중얼대는데 한 마디도 답하지 못했다. 


예나 지금이나, 둘이서만 챙겨 보내는 생일이라니.

아성은 벽에 매달린 거울 속을 멍하니 바라본다. 작고 왜소한 소년이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깨어난다. 소년은 한참 큰 구두를 억지로 끌어 신고 밤새도록 춤을 췄었다….




"아성."


"네."


"생일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재미없는 녀석! 그게 다야?"





신기하게도, 구두는 맞춘 것처럼 발에 딱 맞았다. 카펫 위에서 두어 걸음 움직여 본 뒤 얼른 자리에 앉는다. 신겨주기가 무섭게 바로 벗으려 하니, 명루는 그게 서운한 눈치였다.




"언제부터 신을 거냐."


"글쎄요. 고민 좀 해봐야겠습니다."


"아니 그 정도로 촌스러워? 내가 얼마나 신경 써서 골랐는데!"


"쉽게 신을만한 구두는 아니네요."




닳으면 어쩌나, 낡아지면 어쩌나 벌써 걱정인데. 

어떻게 이걸 신고 더러운 바닥을 걸어 다닙니까. 



"나중에....나중에 꼭 신겠습니다."



벗은 구두를 새것처럼 고이 정리해 넣고, 뚜껑을 닫았다. 겉의 종이봉투가 밤새 젖어든 건 아무도 몰라야 했다.








알티 이벵 당첨되신 유진님의 리퀘입니다.

명공관에서 첫 생일 맞는 아성이 얘기~ 이벵 참여해주셔서 감사해요! 


사실 아성이 첫 생일 전에 파양얘기 나왔던 거면 좋겠다. 그거 막은 게 명루고...

둘이 애틋한데 애써 마음 숨기고 누르는 루성이 보고싶었읍니다 흨흨 ㅠㅠㅠ

브금은 피아프 언냐의 것인데 사실 가사는 요 내용과 별 상관이 없지만 분위기가 넘 어울려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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