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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지한조] bloody hell : blood

블러디헬 혈연








"어쨌든 이번 달 내로 바꿔줘. 도무지 나랑 맞지가 않는다고!"




오렌지 주스를 반쯤 따라내고 대뜸 소리를 지른다. 식탁 언저리에서 뭉친 고함이 달려왔지만, 한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책장을 넘길 뿐이다. 소파 위 가지런히 모은 두 발목이 보인다. 남색 유카타 자락 아래, 유독 희어 보이는 대목이다.




"형이 들어주지 않으면 아버지께 직접 말씀드릴 거야."


"네 교육 관련한 일은 전적으로 내게 맡긴다고 하셨다. 그건 가정교사 문제도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형이 내 부탁을 들어주면 되잖아?"


"..부탁?"





저건 비웃음이 분명하지 않은가? 슬며시 옆으로 돌아눕는다. 턱을 괸 한조가 태연하게 책에만 눈길을 주자 더욱 안달이 나는 것이다. 깐깐하고, 뻣뻣하고. 여튼 지독한 가정교사를 만났다. 듣기로는 한조가 오래도록 수소문하고 고심해서 들인 가정교사라고 했는데,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천방지축 날뛰는 시마다 가문의 둘째 도련님을 잡아 두기엔 아주 제격인 인물이었거든. 덕분에 타지에 머무는 부친은 내심 그걸 흡족해하는 눈치였고, 당사자만 죽어나는 꼴이다. 자유의 박탈이란. 이 피 끓는 열아홉 나이에!


쿵쾅대며 소파까지 다가왔다. 시위라도 하듯 코앞에 대자로 뻗어 눕고 눈을 맞추려 하지만 어림없다. 도무지 평정을 잃지 않는 시마다의 장남, 한조는 여전히 활자를 읽느라 여기로는 눈길 한 톨 주지 않는 거였다. 





"바꿔 줘."


"내 답은 이미 줬다."


"형! 한조!"


"버릇없게 굴면 용돈을 더 삭감할 거다."


"정말 이럴 거야? 나가서 놀지도 못하게 하고, 내 맘대로 선생도 못 바꾼단 말이야?"


"……."


"좋아. 아주 엉망인 녀석이 되어주지."


"언제는 아니었다는 듯 말하는군."





으아아- 얼굴을 털어댄 녀석이 반대로 머리를 두고 눕는다. 차마 늘어진 유카타 자락 안을 훔쳐보고, 아니 대놓고 들여다본단 걸 알고 있을까. 발목으로 뻗어 오른 종아리. 그리고 접힌 다리 안 깊숙한 곳이 보일 것도 같은데. 소파 위, 발치에 아예 턱을 걸쳐 둔 겐지가 본격적으로 옷자락 안으로 얼굴을 들이민다. 불빛 아래 음영진 거웃이 얼핏 민낯을 드러내는 것만 같다.





"말도 안 듣고. 아주 되먹지 못한 짓을 할 수도 있어."


"그걸 협박이라고 하는...., 겐지!"


"것 봐."


"지금 뭘 하는 거냐. 네가 아직도 대여섯 살 아이인 줄 아는 거냐?"


"날 이렇게 만든 건 형이야."




뒤늦게야 음험한 눈초리가 어디에 꽂혔는지 확인했으니. 재빨리 다리를 오므리고 여밈 새를 단속한다. 한조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나무라는 투를 하자 오히려 심술궂은 웃음이 나는 중이다.





"안에 아무것도 안 입었구나?"




매사에 냉소적이고 무감한 형을 보고 있노라면 태생부터 저와는 다른 존재를 보는 듯했다. 명문고와 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현재는 그룹의 뒤를 잇기 위해 후계자 수업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시마다 가문의 골칫덩이인 겐지를 통제하고 달랠 수 있는 것도 오로지 한조의 몫이었다. 이제 어지간한 일로는 눈썹 한 올도 꿈쩍하지 않는 돌부처를 어떻게 흔드는지 나는 알지. 겐지는 슬그머니 발목을 움켜쥐고 당겨대는 시늉을 한다. 단지 시늉만.





"뭐,하는! 거냐. 이..이.....되먹지 못한,"


"말하지 않았나? 그런 짓 하겠다고. 내가 다른 명문가 자제들 앞에서 이런 짓을 한다고 생각해봐. 가문의 수치겠지?"


"겐지. 장난에도 정도가 있다."


"그러니까 형님이 다를 훈육해야지 않겠습니까? 이건 형님의 몫이라고."


"지금 그걸 논리라고 들이대는 거냐? 어린아이도 이 정도로 칭얼대진 않겠군."


"난 그런 거 몰라. 당장은 형이 나랑 놀아줘야겠어."





아랫도리를 더 훔쳐보는 건 실패로 돌아가고, 발길질 당하기 전에 마음을 바꾼다. 한조의 두 발을 깔아뭉갠 녀석이 더듬더듬 몸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무릎을 끌어안고 눈치를 보는 거다. 어떻게 하면 저 품까지 내쳐지지 않고 도달할 수 있을까. 반짝이는 눈동자에 할 말을 잃는다. 밀어내려고 해도 막무가내로 머리를 들이밀고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면, 그만 손에 힘이 빠지고 만다. 저와는 또 다른 눈매를 지녔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조는 그만 한숨이 나왔다.




"겐지. 대체 언젯적 응석을 부리는 거냐. 네놈은..."


"요즘은 왜 같이 목욕해주지 않지? 예전엔 안 그랬잖아. 왜 자꾸 날 피해?"


"……."


"내외하려고 그러는 거야? 이제 나랑 거리를 둘 셈인가. 형."




겉치레를 부릴 줄 모르고, 돌려 말하는 법도 알지 못한다. 기어코 가슴팍 즈음에 얼굴을 기댄 녀석이 천진난만하게 물어오자 말문이 막힐 노릇이라. 어릴 때야 발가벗고 뒹굴며 놀았다고 하지만, 이젠 녀석도 엄연한 성인 티가 나고 있다. 그런데 저런 바보 같은 질문을 하다니. 한조는 대답 대신 녀석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고 말려고 했다. 다시 책으로 눈길을 주면서 말이다.




"무시하지 마. 다 들리잖아."


"듣고 있다. 답할 가치가 없다고 여길 ㅃ.., 윽. 너 진짜!"


"형까지 날 박대하면 너무 슬프다고. 으응?"




살금살금. 도둑고양이처럼 기어오른 입김이 목덜미를 찾았다. 뒤통수를 쥐고 떼려 하지만 힘이 보통이 아니다. 허리를 끌어안은 녀석이 도통 포기를 모르기에 그만 헛숨이 픽 새어 나오고 말았다. 이건 칭얼거리는 수준이 아니라, 거의 애무에 가깝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목덜미에 제 얼굴을 부비적대고 살짝 깨물기까지 하는 작태에 발목이 덜덜 떨릴 지경이다.




"좋아. 알았..으니까..!윽,읏...겐지! 잠깐..."


"내 말 들어준다고?"


"...그래,허어...들어주마. 그러니까. 그만, 좀!"


"약속한 거야. 분명히."




웃음기도, 젖은 콧소리도 모두 자취를 감춘다. 팔목을 꺾어 잡는 힘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낀다. 책을 떨어트리고만 한조가 크게 뜬 눈으로 위를 우러른다. 이 녀석이 원래 이렇게 넓은 어깨를 가졌던가. 붙잡는 힘이 이리도 거셌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낯선 사내 한 명이 이글대는 눈으로 단단히 벼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시작된 맹공에 손가락 끝이 춤추듯 너풀너풀 치맛바람을 일으킨다.




"대체, 뭘....해달라고..이러ㄴ..!!"





귓덜미를 빨리며 몸을 뒤튼다. 덩달아 뒤틀리는 소파 위.





"네 몸에 넣고 싶어. 한조."




빌어먹을 놈의 혈연.






짧게~~~~

만맘님 연성 어제 새벽에 보고 머리 쥐어뜯은 1인 너모 좋아서;;;ㅇ<-<
먼가 젊한조 지금보다 더 냉소적이고 좀 시크하면 좋겠따
그걸 깨부수는 건 겐지 뿐이지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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