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연赤戀

三. 도사린 어둠 






광풍과 같은 밤이었다. 비록 직접 안에 들어 지켜본 것은 아니나, 밀실 너머 밤새도록 태자의 곁을 지켰던 이라면 모를 수 없다. 열전영은 벽 건너편에서 이어졌던 새된 호흡과 열기를 면면 기억해두고 있었다. 그처럼 진노한 태자의 모습은 여러 해 그를 모시면서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드문 것이었고, 그 까닭을 짐작하고도 남는 중이다.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 늦은 밤 안 의원이 들었다. 두 사람은 늦은 밤에서부터 동이 터 오는 순간까지 통로 후미진 곳에 마련된 공간에 앉아있기만 했다. 이미 처음이 아니건만, 태자와 매 종주가 교합에 임하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이를 보필하는 이들의 긴장감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황제 폐하를 알현하기 전, 태자께서 필히 내게 시료를 받으셔야 할 것이네."


"그럴 테지요. 이번엔 존체에 얼마나 상흔이 남았을지."


"자네 말 속에 뼈가 있군. 매 종주를 원망하는 것인가?"


"송구합니다. 저는 단지...."





열전영은 군관으로서 언변이 뛰어나거나 듣기 좋게 꾸미는 법을 몰랐다. 제 주군을 살피는 마음에 무심코 튀어나온 발언이리라. 안 의원 역시 책망하려던 것이 아니니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탐혈인의 야성성에 동화되고 나면 몸 구석구석 뜯기거나 할퀴어진 상처가 생겨난다. 경염은 겉으로 내색지 않았으나, 금의锦衣를 벗기면 숨겨지지 않는 흔적이 그를 물들이고 있었다.


본래 탐혈인이라 함은 말 그대로 인간의 피를 탐하되, 뿐만 아니라 젊고 건강한 이의 기력氣力을 취하여 연명할 수도 있었다. 특히 탐혈인으로 변모하여 별히 교감을 통한 단 하나의 대상. 각인된 이에 한해서는 소량으로도 기운을 유지할 수 있다. 북연국과의 난전 이후, 급보를 받고 종주를 찾아 나섰던 안 의원은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 태자 소경염이 임수를 발견하여 가장 먼저 접근하였고,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각인하게 된 것이다.


탐혈인과 각인을 맺게 되면 그 체향에 홀려 순간적인 사리판단을 잊게 된다. 고서적에 묘사된 지식을 따른 것일 뿐,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기묘한 섭리를 모두 헤아릴 수 없는바. 오랜 전란에도 결코 무너지지 않던 철옹성의 사내가 탐혈인에 이성을 잃는 모습은 상상키 어려운 것임에 틀림없다. 열전영과 안 의원은 각자의 주군이자 지기, 맹의를 다진 동료를 지키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제 천견淺見으로는, 매 종주의 안위를 언제까지 지켜드릴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


"이곳은 하나의 왕부王府도 아니고 폐하께서 계신 황궁이지요. 비록 밀실을 만들어 두었다 하나, 언제까지 유효하다 하겠습니까."


"자네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잘 알고 있네."


"게다가 종주의 외모는 뭇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도 남지요."





한겨울의 빙설氷雪보다 창백한 피부. 빛을 받으면 홍금색으로 번쩍대는 두 눈동자…. 태자의 명으로 탐혈인에 대한 온갖 자문을 구한 바에 의하면, 사실 처참한 운명을 짊어져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인간과는 사뭇 다른 용모에 비현실적인 미美의 요건을 갖추었으니 짐승처럼 갇히어 성 노리개로 전락한 실례도 있었다.


언뜻 들으면 색정에 미친 악인이 벌일 법한 일이지만, 탐혈인과 자의로 각인했던 이가 정욕을 주체하지 못하여 폭주한 경우가 더 많았다. 보통의 인간이었다면 제압하여 목숨을 거두면 될 터다. 하지만 각인된 이를 보호하려는 탐혈인의 특성을 이해한다면, 이는 참으로 비극적인 결속의 말로였다.


머나먼 오랑캐의 땅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탐혈인에 족쇄를 채워 노예처럼 부리고 훈련해, 전장에서 병기와 같이 부린다는 기술도 존재한다. 떠도는 정보를 모두 추린 것이니 개중에 낭설 또한 섞였을 것이다. 그러나 탐혈인의 개체는 극히 소수이며 인간사에 얽혀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은 일만은 분명했다. 더군다나 경염은 황궁에 머물며 앞으로 일국을 다스려 나가야 할 태자의 신분이다. 만인이 주시하고 있는 위치에 올라, 벽에도 귀가 달렸다는 황궁에서 본인이 원하는 바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그 누구도 확신하지 못할 일이다. 




"저는 태자 전하가 염려되어 잠도 이루지 못하겠습니다."


"이 모든 걸 감내하고 벌이신 일이 아닌가."


"그렇지만,"




어느덧 날이 밝아 목서탁木书桌 중반까지 빛이 드리운다. 안 의원은 가만히 고개를 내저어 뜻을 전한다. 탁상공론하여 해결될 일이 아니었으며, 한 남성의 결의와 애정이 태산처럼 높고 깊은 탓이다. 태자의 뜻을 꺾을 이, 죽음을 내건다 한들 찾을 수 있을까.



"매 종주를 궁에 들이신 것 자체가 무모이고, 도전이네."










침구로 홍매색 얼룩이 돋았다. 태자는 상흔이 할퀸 등허리, 뒷모습은 결코 보이지 않고 오로지 곁에 누운 몸을 품는다. 죽은 듯 천장을 향했던 몸은 만물의 생동生動에도 여전히 차갑다. 오히려 해가 뜨고 한낮이 시작되면 육신을 보호하려는 듯 더더욱 싸늘하게 가라앉는 것이다.


밤사이 열락을 좇는 듯 경염의 얼굴이 찾아든다. 그는 살짝 젖혀낸 옷깃 아래 가슴팍을 어루만지다가 유두를 머금었다. 빛깔은 연산호軟珊瑚와 같고, 혀가 핥아 뜨겁게 달래면 다시금 딱딱하게 일어나려 했다. 속눈썹이 은청색으로 발광한다. 경염은 시선을 들어 그 자태 낱낱이 살피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살결을 건드리고 음미할수록 본연의 체향이 짙어진다. 탐닉하지 않으려 하나 결국은 마음을 놓을 수 없고, 흔적을 남기려 치열을 곤두세우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긴 시간 그를 품고 순흔을 내린다 하여도 다음 날이면 씻은 듯 사라지고 마는 향취이다. 회복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니, 그럴 때마다 탐혈인의 존재에 대해 실감할밖에.





"밖에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나도 알고 있다. 앎에도 너를 놓기 싫은 것이지."


"궁 내부의 정세 불안하니, 황상께서 더욱이 자네를 찾으실 것 아닌가."


"정말 매정하군."


"....경염."


"이미 벌어진 일을 가지고 자책하는 건 그만두게. 임수 너의 슬픈 낯을 보려고 이곳까지 데려온 게 아니다."




 

벽으로 가로막혀 있다고 하나, 그의 능력이라면 백 리 밖의 기척과 말소리도 가늠할 수 있을 터였다. 열전영을 비롯한 동궁 보필 인력이 이른 시각부터 근처에 집결해 있을 테니 이처럼 태평하게 여락餘樂에 겨울 때 아니라 여긴 탓이라. 임수의 심정 편치 못한 것을 헤아려, 경염은 도리어 밝은 낯으로 철 없는 필부처럼 굴었다. 제 입에 담아냈던 가슴판을 더듬다가 손가락을 구부려 긁으니, 임수는 곤란한 기색으로 몸을 뒤챈다.


사실 이틀 전 밤에는 혈색이 탁하고 눈동자의 색도 희미해져 있었다. 급한 경우엔 이미 참수가 결정된 흉악범을 형부刑部에서 몰래 빼내 와 흡혈하도록 임시방책을 마련하곤 하는데, 그 하루 새를 참지 못하고 벌인 일이다. 임수는 자신이 제어를 잃고 황궁 안을 헤집으며 다닌 사실을 끝끝내 넘기지 못할 것이다. 비록 한 몸이라고는 하지만, 매장소의 인격은 보다 난폭하며 냉엄한 면이 있었다. 





"황제 폐하께서,"


"걱정하지 마. 내가 다 알아서 할 것이다."


"그러고도 남을 고집이지. 경염 너는..."




말을 이으려던 임수는, 끝내 입술을 달싹이다가 말끝을 흐린다. 다가들어 입술 중앙에 가벼이 접문한 태자이다. 





"안색이 훨씬 좋아져 내 마음이 놓여."


"당연한 일이지. 그렇게 엄한 이를 해하였으니."


"어차피 부황께선 한 번 침전에 들인 궁녀는 다시 찾으시는 법이 없네. 그러니,"


"애써 합리화하지 않아도 돼. 내가 무고한 이를 살육하고, 그 피를 취한 것은 달라지지 않으니까."


"...내가 실언을 했군."





자리에서 일어난 임수가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리할 동안, 침상에 널브러진 옷가지를 걸쳐 입는 태자이다. 그는 혹여 맨살에 성긴 상처를 들키기라도 할까 마음을 쓰는 듯했다. 다행히 작은 창문을 향해 다가가느라, 임수는 그 사실을 모르는 눈치다. 빛을 피해 벽면으로 숨어든 이가 작은 말소리를 내었다.





"기억이 나질 않아. 그 날 밤은.....교합하는 동안 너를 통해 어렴풋한 내용을 짐작했을 뿐."


"그런 건 중요치 않네. 이번 일은 내가 어떻게 해서든,"


"폐하께서는 의심이 많아 처자식조차 믿지 않는 분이지. 그건 자네가 더 잘 알지 않나."


"……."


"섣불리 사건을 축소하거나 덮으려 했다간 더 큰 역풍을 맞게 될 거야."


"그렇게 말하니 제법 매장소의 태가 나는군." 





나체 위로 얇디얇은 침의를 걸친 임수는 그 투광함에 비추어 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릴 것만 같다. 경염은 굳어있던 입매를 애써 풀어낸 후, 등 뒤로 다가가서 허리를 품어 안는다. 삭막한 공간에 서로를 의지하여 서 있으니 애틋함이란 배를 더하였다. 임수의 목덜미에 콧날을 비비며, 오늘 하루 버티고 견뎌내야 할 일들에 각오를 다진다. 약해지거나 흔들려선 지켜내지 못할 것이 너무 많지 않은가.





"경염. 황궁에 몰래 들어온 직후,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나?"





차마 닿지 못할 빛을 우러르고, 임수의 눈동자는 공허한 *와류涡流에 휩쓸린다. 




와류涡流

소용돌이




"결국엔 내가 널.."


"임수!"


"내가 널, 삼켜버리고 말 것이라."


"임수. 어째서! 왜 그런 말을 꺼내는 것이냐."


"난 널 잡아먹을 뿐이지."


"듣지 않겠다. 이 소경염을 못난 사내로 만들지 말아다오. 부디..."





힘없이 떨구어졌던 턱을 잡아 올린다. 한 차례 격한 입맞춤을 허락하고 나서도 눈빛에 담긴 애수는 걷히지 아니하였다. 태자는 더욱 힘주어 포옹에 임한다.




"경염. 내가 이곳에 있는 게 맞는 일일까."


"맞고 틀리고는 중요하지 않아. 내가 널 원할 뿐이다."




조신早晨의 빛을 타고 흐른다. 태자의 결의가 품은 이후, 임수는 그 어떤 말도 꺼내지 아니하였다. 태양이 떠오를 시각이다.









자시子時를 훌쩍 넘기고 나서야 인영이 안으로 들었다. 그마저도 통행이 있는 길을 거치지 않고 암로를 통하여 은밀히 알현에 임한다. 이는 현경사 관리를 찾아계실 때면 황상께서 놓치지 않고 명하는 바이니, 그 보안을 유지함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야 했다.


현경사 책임자인 하강은 오랜 시간 황상을 보필하며 두터운 신임을 받는 자였고, 일을 처결함에 있어 한치의 부정도 없다 여겨져 중대한 사안을 다룰 때면 어김없이 그가 불려오곤 했다. 탕조 살인사건의 경우 믿음직한 태자에게 일을 충분히 논의하였지만, 그것과 별개로 또 하나의 *면안面眼을 얻고자 함이라. 만사에 신중을 기하는 황상의 성격으로 볼진대 하강에게 별도의 수사를 맡기려 한 것은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었다.



면안面眼
사물을 보고 분별하는 견식




"하강. 내가 전한 서찰은 읽었겠지."


"예. 폐하. 황궁 내에서 이런 천인공노할 사건이 벌어지다니요."


"으음....아주 골치가 아파."


"이 일은 최대한 은밀하게 처리해야 할 듯싶습니다. 입을 많이 탈수록 사건의 본질이 흐려지지요."


"나 역시 같은 생각이야. 그래서 태자와 자네 외엔 아는 이가 없지."


"과연 영명하십니다."




황룡이 놓인 수석繡席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고 있었으나, 사건에 대해 언급하자 몸을 바로 일으켜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취한다. 어둑한 중 형촉에 쏘인 눈동자를 보고 있노라면 황상이 얼마나 이 사건에 크나큰 관심을 쏟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하강과 몇 마디를 더 주고받던 황상께서 슬쩍 눈짓하자 그림자 속에 꼼짝 않고 머물러 있던 태감 총관이 두말없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타오르는 초를 사이에 두고 듣는 이 하나 없으니 비로소 완전한 밀담이 되었다. 현경사는 오로지 황제의 명을 좇아 사건을 수사하는 기관이었으므로, 그 폐쇄성에 대해 누구도 논박하지 못하는 유일무이한 곳이다. 사안이 급박할 때는 황명을 전해 받아 대리 수행을 거친 실례도 많으니, 실로 무소불위의 집단이 아니겠는가.


탕조에서 발견된 주검은 신원미상의 시체로 분류하여 철저한 통제하에 두었다. 훼손도가 심각한 탓에 시간이 지체될수록 본 모습을 살피기 힘들 것이라. 하강은 이곳에 들기 전 시체를 면밀히 살피고 왔노라 답하였다. 





"보고된 바를 살펴보니, 아주 흉측하더군. 목덜미와 상체 여러 군데가 훼손되었다지?"


"예. 도무지 인두겁을 쓴 자의 소행으로 보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잔약한 여인을 그리 다룰 이유가 대체 뭐겠느냔 말이야! 흉조로다. 흉조."


"……."


"정말 미치광이의 소행이거나, 치정이 얽혔거나...날 욕보이려는 짓거리로밖엔."


"감히 그 누가 폐하의 권위에 도전한단 말입니까. 그게 사실이라면 이는 반역으로써 다스려야 할 일이지요."


"태자의 말로는 아직 그리 속단하기엔 이르다 하더군."





자세를 반대로 고쳐 앉은 황상이 중얼대자, 그 은근한 어조가 발치에 깔린다. 눈이 마주친 동시에 얼른 고개를 조아린 하강이 잠자코 생각에 잠긴 듯하다. 비록 단독 수사를 맡겼다고는 하나 말 한마디를 잘못 아뢰었다간 역으로 노여움을 살 수도 있다. 하강은 현 황제의 기질을 완벽히 파악하고 있었기에 처세에서도 타고난 모습을 보였다.





"하강. 자네의 생각은 어떤가?"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이를 꼭 역심으로 치부할 것은 아니지요."


"경염 그 녀석은 아주 확신에 차서 말하더군. 그게 참 이상하단 말이야. 그 기색은 마치,"


"……."


"이 사건을 축소하고 싶어 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어. 물론 자식 된 도리로 내 근심을 덜어주려 한 탓이겠지만,"


"태자께서요?"


"음."





흰 눈썹이 솟아 꿈틀댄다. 태자의 언행이 묘사되자, 하강의 눈은 보다 빛을 발하며 작은 것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움직였다. 폐위 태자로 이미 명을 달리한 기왕 소경우. 그의 숙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하강은, 오늘날 태자에 오른 경염이 마음에 들 리 없었다. 현경사 폐지를 주청했던 기왕을 어버이처럼 따르던 이 아닌가. 


물론 석연찮은 점을 감지했다 하여 즉시 면전에 고할 수 없는 일이다. 상대는 숱한 정쟁政爭을 이겨낸 사내다. 고작 군왕 신분에서 태자에까지 오른 독종이란 말이다. 특히 지난해 전란을 겪은 후 황상의 총애가 상상을 초월하니, 어설픈 공격을 가했다간 도리어 큰 화를 입게 될 것이었다. 


사체를 살펴본 직후 느꼈던 의구심이 조금씩 세를 불린다. 북연국과의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임수의 시체를 찾기 위해 오랜 시간 공들인 현경사였다. 하강은 황상의 명과는 별도로 임수의 행방을 밝혀내기 위해 집요한 추적을 멈추지 않고 있던 차다.






"폐하. 제가 주검을 살피고 느낀 바를 아뢰어도 되겠습니까."


"오호. 달리 발견한 것이 있는가?"


"일단 목덜미의 해진 가죽과 패인 정도는 거의 인간이 남긴 것으로는 볼 수 없었지요. 그 잔혹성도 여태 본 적 없는 정도입니다."


"그건 나도 익히 들어 알고 있네."


"외람되오나, 이것을 단지 인간의 소행으로 한정할 것은 아니라 사료됩니다."


"으음?"


"사실 현경사는 몇 달 전부터 금릉 도처에서 벌어지는 괴사건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황상이 완벽히 경청하고 있단 것을 느끼자, 하강은 한 걸음 더 나서서 말을 이어갔다. 확신에 찬 어조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을 지녔고, 단호한 그의 표정 역시 청자를 사로잡을 만하다.





"한 달 전 이부상서의 가솔이 집 마당에서 급살을 맞았지요. 사체가 아주 흉측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나?"


"예. 중한 사안은 아니라 여겨져 부각된 것은 아닙니다."


"으음."


"또한 보름 전에는 군영에서 이탈한 금위군 한 명이 비슷한 상태로 발견되었고, 이레 전 실종된 침방 나인은 여태 생사를 알 수 없습니다."


"실종? 실종 역시 이 사건과 연관이 있단 말이야?"


"정확한 증좌는 없습니다. 그러나 나인의 마지막 행적이 빨래터인데, 벽에 흩뿌려진 핏자국과 땅에 팬 듯한 발자국이 남아있었습니다. 마치 공중으로 솟구친 듯 묘한 자국이었지요."


"하강. 내게 말하려는 바가 무엇인가?"


"다른 뜻은 없사오나, 이 얼개를 맞추어 간다면 평범한 인간의 소행이 아닐 수도 있단 말을 드리려 합니다."


"인간이 소행이 아니다..."






다소 황당한 유추일 수 있으나, 하강의 말이 그저 허무맹랑하다고 치부할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허튼소리를 고할 인물이 아니니 황상으로서도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턱을 괸 채 깊이 생각에 잠긴 모습이 옥좌에 담긴다. 





"그 존재가 누구든, 폐하의 안위에 위해가 된다면 그냥 두어서 안 될 일입니다."


"자네 말이 맞아. 하루라도 빨리 놈을 잡아야 하네."


"신臣 하강. 목숨을 걸고서 이 사건을 밝혀내겠습니다."





그 각오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황상의 태도로 인해 하강의 자신감은 극에 달하였다. 황상의 불안이 곧 현경사의 힘이요, 권력이다. 그는 말 한마디로 사람의 심리를 움키고 흔드는 법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자네 말을 듣고 나니 참으로 흉악한 일이 아닌가. 남녀는 물론 민간인과 병사를 구분 않고 그리 도륙을 내다니."


"단지 그뿐이겠습니까."


"그럼 또 다른 사실이 있단 말이야?"


"폐하. 진정 모르시겠습니까."





노년의 탁성이 기둥을 휘감는다.





"사건의 발생 장소가....점점 폐하의 처소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약간 리빌드된 부분이 있지요.

여기서는 팔팔하게 살아계신 하강이 악의 축으로 등장해주실 예정이여요
하 하 하 ~~~~
다음편은 다시 아성임수 재회의 격정씬으로다가~~(천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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