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자 전하. 길이 미끄럽사옵니다."



처마 아래 끊임없이 물길이 흐른다. 퍼붓는 빗줄기에 한 치 앞도 가늠키 힘드니, 이는 금일 늦은 오후부터 쏟아지는 폭우가 그치지 않은 탓이었다. 비바람에 꺼질 듯 위태로운 행등이 앞을 비추나 무용지물. 어둑한 황궁을 한 무리의 행렬이 헤쳐간다. 태자라 불린 사내가 잠자코 끄덕이고도 속도를 늦추지 않자, 바로 곁에서 행등을 비추며 보필하던 환관이 간곡히 재청하였다.




"전하. 부디 걸음을...,"


"지체할 틈이 없질 않으냐. 하필 비까지 퍼붓다니."


"혼례단과의 접견이 길어진 연유이니, 필시 태자비 마마께서도 이해하실 것입니다."




첨언을 들어놓고도 태자는 마음이 풀리지 않은 듯 얼굴을 절레절레 흔들기 일쑤였다. 혼례를 치르고 합궁 전부터 날씨는 험악하고 일정 또한 지체되었으니, 생애 첫 대례大禮를 치른 태자로서도 긴장되고 답답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짓궂은 혼례단의 수에 휘말린 게 과오이다. 그 화려한 언변과 재주에 정신을 팔리다니….


구인족狗人族과의 화친혼은 오래전부터 이어진 관례로서, 오늘날 황족 중 한 명을 북연 태자의 비妃로 맞아들여 그 결속을 공고히 다지기 위함이라. 쉽사리 볼 수 없는 구인족의 이색적인 외양은 황궁 모든 이들의 이목을 끌곤 하였다. 완전한 성체가 되기 전까지는 성인 남성의 허리에 닿을 만치 작은 체구를 지녔으며, 짐승의 귀와 꼬리를 지닌 것 또한 특징이다.


이국의 황족과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으니 태자로서도 그 각오가 남달랐다. 명색이 북연의 태자였으므로 부황의 면에 먹칠할 일 없도록 예를 다하리라 마음먹었건만. 비바람 몰아치는 밤, 처소에 홀로 남겨져 자신을 기다리고만 있을 태자비를 떠올리니 난감할 수밖에. 자꾸 술을 권하고 타지의 무용담을 늘어놓던 혼례단의 호의는, 아직 어리고 서툰 태자비 내외의 초야를 질투한 처사가 아니었을까.



"태자 전하 납시오-!"



처소 문턱을 넘는 동시에 번쩍, 허연 섬광이 얼굴을 가로지른다. 이윽고 커다란 천둥소리가 들려와 으스스한 기분마저 드는 것이다. 태자는 구겨진 미간을 도통 풀지 못하고 침전의 문을 열어젖혔다. 온통 붉은 주단과 황촉이 반기는 공간, 우뚝 선 사내가 주변을 둘러본다.



"……."



적색에 황룡 수놓아진 비단결이 늘어져 있고, 침상 위로 마땅히 있어야 할 모습 보이지 않으니 의아한 중이라. 태자는 소리 없이 다가가서 면밀히 살피었다. 어린아이 정도의 크기로 앉아 눌린 자국이 침구에 남겨졌다. 손바닥을 대어 보자 아직 온기가 미미하여, 슬쩍 침구를 쥔 채 당겨본다. 으음....중앙부 볼록 솟아있는 윤곽을 발견하고 나서야 태자비의 행방을 짐작할 수 있을 터다.


인상을 써대던 태자의 얼굴에 슬며시 미소가 깃든다. 그는 아이 같은 장난기를 억누르기 위함인 듯 어금니를 꽉 깨물고 침구를 조금 더 끌어댄다. 그 끄트머리로 연갈빛 풍성한 꼬리털이 제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다. 예복을 갖춰 입었으나 머리를 감싸 쥔 채 바들바들 떠는 궁둥짝이 어렴풋이 가늠되었다. 




"태자비."


"……."


"벌써 잠자리에 드신 겁니까."




인기척을 느낀 몸뚱어리가 흠칫, 어깨를 떨고 뒤를 돌아본다. 웬 남성이 번쩍이는 뇌전雷電을 등지고 서 있으니 놀란 것일까. 끄윽- 숨을 삼키고서 눈망울을 올려든 이가 구인족에서 보낸 황족이라 한다. 아직 성년이 되기 전이라 하였으니 어린아이와 다를 것 없는 몸 크기도, 희미하게 풍기는 여린 살 내음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눈썹은 검고 짙어 강한 인상을 풍길 듯하나, 정작 깊고 유순한 눈매는 순정한 기운을 풍긴다. 재빨리 돌아앉아 거드름 피우는 행색을 봐선 고국에서 점잖고 위용 넘치는 황자로서 자라난 것이리라. 그래 봤자, 고작 타지에서 몰아치는 낙뢰에 겁먹고 울먹이는 아심兒心이 아니던가.




"저런. 홀로 울고 있던 것입니까."


"..아니오!"


"그런데 어찌 태자비의 눈꼬리 끝으로 물기가 보이는 것입니까."


"그것은, 그것은...내 적적한 마음에 잠시 누워있다가 깜빡 잠이 들어..!!!!"


"어이쿠."




슬그머니 침상에 걸터앉았던 태자는 외마디 감탄사와 함께 몸을 휘청였다. 무슨 까닭인고 하니, 예고 없던 천둥소리에 혼비백산 품으로 뛰어든 몸뚱어리라. 허벅지 위로 올라앉더니 잔뜩 몸을 웅그리고서, 붉은빛 예복에 얼굴을 파묻는 것이었다. 수발드는 궁인이나 모후 외에 제 살갗을 내어준 적 없으니 태자로서도 잠시 당황하여 온몸이 굳어버렸다.


태자비는 무심코 위를 흘끗대더니 곧 입을 벌린 채 시선을 떼지 못한다. 고국의 그 어떤 사내들 보다 늠름하며, 천계天界에서 내린 듯 수려한 외모의 귀공자가 저를 보살피고 있으니 그만 부끄러워 숨이 턱하니 막히는 것이었다. 태자는 그런 속내는 알지 못하였는지, 퍽 다정스레 말을 잇는다.




"……."


"부인. 천둥이 무서우십니까?"


"..그런 것이, 아니오! 흐흥..으.."


"그럼 어찌 슬피 우는 겁니까."




콧물을 훌쩍 들이마신 이가 왕왕 고개 저으며 버티자, 결국은 손을 들어 정수리를 쓰다듬고 어설프게나마 품어주게 되었다. 차마 대답지 못하는 것을 보니 마땅한 핑계를 찾지 못했음이라. 태자는 모른 체하며 아이를 달래듯 태자비의 궁둥이를 두들겨본다.




"으,으엉..흐..무엄하다! 감히 내 몸에..."


"먼저 이 몸으로 안긴 게 부인 아닙니까."


"부..?인...이상한 호칭으로 부르지 마시오..흡,으흑...내 이름은..나는...소경염인데.."


"알겠소. 알겠습니다. 경염. 됐습니까."




흐어엉- 더욱 섪게 터져버린 울음에 진땀 흘렸단 것은, 침전을 지키던 궁인들에 의해 한동안 입소문을 탔다. 






- 3년 후




들고 있던 완구를 놓는다. 솜뭉치와 노끈을 한 데 엮어 둥글게 만들고 꿩 깃을 장식한 것으로, 동궁전에서 특별히 세공장에게 명하여 태자비의 이름을 새긴 금패를 달아놓기도 했다. 오랜 시간 공들여 제작한 것인데, 정작 그 주인은 관심 쏟을 여력이 없는 듯하니 다음으로 기회를 미룰 밖에. 여태 처소를 지키던 나인이 조용히 고개를 내젓고 물러난 참이었다.



"이제 얼굴도 보여주지 않을 겁니까?"



모로 누워있는 태자비를 향해 다가간다. 봄기운 완연하여 만물이 유희하는데, 정작 나라의 국본인 동궁 내외에만 계절이 비껴간 듯하다. 그 원인은 다름 아닌 태자비 경염에게 있으리라. 언젠가부터 식욕이 떨어지고 만사에 기력을 잃었으니 지아비 된 도리로 태자의 마음 역시 편할 수 없었다.


구인족의 생김새는 물론 신체적 특성 역시 상식의 범주를 벗어나, 그 성장 속도와 정도는 평범한 아이들과는 차이가 컸다. 약 세 번의 해를 거치며 경염은 완연한 청년의 외양을 갖추었고 음색이나 행동거지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제 고국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우는 모습 볼 수 없으니 가끔 아쉬운 마음이 들긴 하였지만, 어린 동생을 보살피며 품고 자던 때와는 또 다른 긴장감이 태자를 찾은 것도 사실이다.


혼례 당시는 두 사람 모두 어리고 특히 경염의 성숙도를 감안하여 실질적인 합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저 낯선 타지에서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경염이 안쓰러워 마음을 쓰던 것이, 점차 애틋함을 지녀 깊이를 더하게 되었다. 태자의 심중으로 뿌리내린 감정은 어느새 깊은 밤 침전에서 묘한 열기를 불어 일으키게끔 하는 발화점이 되기도 하였으나, 근래 본 적 없이 날카로운 경염의 반응 앞에서 태자 역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나날이다.



"부인. 내가 왔대도요."


"……."



몸을 살짝 말아 누운 등 뒤로 붙어 앉는다. 늘어진 꼬리를 조심스레 손등으로 건드리면 무의식중에도 슬그머니 말리며 손길을 피해버리는 것이었다. 최근 늘 같은 양상이다. 예전엔 먼저 다리를 붙잡고 매달리며 처소에서 좀 더 자신과 있어 달라 울먹이던 이가 아니던가. 헌데 오늘날의 경염은 부쩍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가 하면 이유 없이 손톱을 세우기 일쑤였다. 덕분에 너른 소맷귀 안으로 태자의 손등과 팔목에 자잘한 생채기가 숨겨져 있다.


북연 황실의 태의 또한 구인족의 진단에 대하여 고서적에 의지할 뿐 정확한 시료가 불가능하니, 가까스로 달래 태의에게 보여도 허사였다. 결국 부황께 고하여 구인족의 의관을 초빙하도록 했으니 수일 내로 궁에 당도할 것이었다.




"경염. 잠이 든 것입니까."


"...전하."


"괜찮소. 좀 더 누워 있어도 됩니다."


"송구합니다. 아침부터, 제가 열증이...가시질 않아.."




명석한 탓에, 그동안 북연 황실의 예법을 익히는 데 막힘이 없었다. 경염은 이제 막무가내 울며 칭얼대는 어린 개체가 아니었으되, 가까이 다가가면 첫날 맡아두었던 살 내음은 여전하다. 태자는 다 헤아리고 있다는 듯 끄덕이며 뺨을 쓰다듬는다. 뒤에서 몸을 품다시피 한 태자가 싫지 않은 듯 얌전했으나, 정작 경염의 반응은 엉뚱한 곳에서 양상을 달리하였다. 



"으..윽, 답답...해..."



순간 손등을 스치는 통각에 입이 벌어졌다. 경염이 다시금 제 손에 상처를 냈다는 걸 깨닫자 태자는 실소하여 빤히 그의 얼굴을 바라본다. 예전부터 두 사람만 있는 침전에서는 엉덩이를 두들겨 주는 게 친밀함의 표시였는데, 아무 생각 없이 이를 행하였던 태자로서는 황당할밖에. 그르릉- 목을 울린 경염은 누구 손에 상처가 났는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는지, 눈썹을 팔八 자로 일그러트린 채 몸을 뒤챈다.



"진정 그렇단 말이오?"


"..모르겠,습니다. 너무 답답하고..숨을.."



태자로서도 오기가 발동할 참이었다. 원인도 알 수 없을 행동에 안쓰러워 늘 져주고 말았으나, 불의의 일격을 당하고 나니 내친김에 끝을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싶은 것이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연신 중얼대는 것을 무시하고, 그는 다시 경염의 꼬리 부분으로 손을 뻗는다. 앞으로 도망하지 못하게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았으니 진퇴양난이라.


둔부의 곡선을 건드리는 듯하다가 적갈빛으로 자라난 꼬리를 제법 세게 쥐었다. 이전부터 유독 예민하게 굴던 부위였기에, 필시 캬르릉 웃음을 터트리며 몸을 데굴데굴 굴릴 것이겠지. 그러면 젖혀진 경염의 목덜미에 이마를 묻고 달래주리라. 태자의 속내는 그와 같았다. 이 같은 행동이 어리석은 짓이었을까.




"끄-윽,흑-! 윽..아ㅍ..."


"경..염? 어디가 불편한 겁니까.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허,흑..배가, 아픕니다. 갑자기..통증이.."




품으로 담겼던 등허리로 열이 한창이다. 꼬리를 쥔 순간 바짝 곤두선 터럭의 올 하나까지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라, 태자 역시 사색이 되어 그 몸을 돌려 눕히고 살피려 하였다. 과연 아랫배로 손을 올린 채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니 괜한 장병装病은 아닐 것이다. 처음 겪는 일로 덜덜 떨리는 태자의 손이 복부로 얹힌다. 처음부터 이리했던 것인지, 어느새 펄펄 끓고 있는 신열에 놀란 것도 잠시.




"아아.."




탄식한 태자가 순간 얼굴을 붉히며 마른침을 삼킨다. 영문도 모른 채, 경염은 가쁜 숨을 내쉬며 괴로운 내색을 숨기려 안간힘이었다. 울긋불긋한 두 뺨. 축축한 두 눈동자. 그리고 벌어진 입술 새로 새는 뜨거운 숨결.

경염의 단전 아래, 앞섶이 부풀어 있는 것이 아닌가.




"경염. 이것은...아픈 게 아닙니다."


"흐-으윽..그럼, 어째서...전하가 저를 어루만질 때마다..왜..."


"그것은,"




태자는 한결 힘 있는 손길로 여밈새를 헤치었다. 태의를 부르려 했던 마음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하나의 열망에 사로잡힌다.




"그대가 동정기动情期에 접어든 탓이라오."




* 동정기动情期 = 발정기






별이님 리퀘로 써보았습니다 하핳 2-3천자 분량이 넘 짧지효~(무양심 

두 내외 합궁도 보아야하눈데..

1황궁 1멍경염 필수템..ㅠㅠ 

글엄 저는 별이님의 앵슷 북정 or 루성을 기다리며~~~~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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