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악연이라기엔 너무 끈끈한 그것.
그저 악연이라기엔 너무 끈끈한 그것.







우르크Uruk, 현지시간 PM 5:25




"생각보다 늦어졌군."



그림자가 한창 길어질 시간이다. 넓은 보폭으로 창고에 걸어 들어온 사내가 소리 나도록 손뼉을 마주쳤다. 큰 손을 비벼대는 모습에서 묘한 기대감이 엿보인다. 그는 창고 중앙에 방치된 청년을 향해 걸어갔다. 사막색 군복은 말할 것도 없고, 드러난 팔뚝과 얼굴에도 핏자국과 구타의 흔적이 역력하다. 바로 코앞에서 느껴지는 기척에도 쉽사리 얼굴을 들지 못하는 걸로 봐선 의식이 양호한 상태는 아니었다.




"캡틴. 내가 누군지 알아보겠나?"


"……."


"정신을 아예 잃은 정도는 안 된다고 했을 텐데."


"..아ㄱ,스..."


"좋아. 완전히 맛이 가버린 건 아니군."




블랙 슈트를 갖춰입었던 사내. 그러니까 아구스라 불린 남자는, 청년의 상태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제 수하들을 윽박지를 참이었다. 작지만 분명하게 제 이름을 불리자, 그때서야 한결 누그러진 태도다. 아구스는 축 늘어져 있던 군형 스포츠 헤어를 잡아 올린다. 싱긋 입꼬리를 올려 보이고서, 매끈한 볼을 자국 날 정도로 눌러쥐었다.



장시간 구타에다가 약물투여까지 당했으니 청년의 시선이 고르지 못한 건 어쩌면 당연했다. 그는 피가 묻어난 아구스의 옷깃을 발견하고 두어 번 헛구역질했다. 이내 입술을 억지로 앙다물고 평정을 유지하려는 것 같았다. 자제력과 인내심이 엄청난 녀석이니까. 투지를 불태우기엔 최적의 상대다. 



이곳에 도착하기 전, 거래 과정에서 작은 헤프닝이 있었다. 거래 기한을 단 하루라도 지키지 못하는 건 즉결처분 사유에 해당한다. 그것은 상법도, 군법도 아니며 오로지 아구스가 확립해 놓은 철칙이었다. 상대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1초도 망설이지 않았다. 화약내와 핏자국이 튄 건 조금 짜증스러울 일이었지만, 딱히 기억에 남겨놓지 않는다. 그에게 타인의 죽고 사는 문제가 의미로써 다가온 적이 없었으므로.  




"좀 더 서둘러 왔어야 했는데. 응?"


"중위...유...ㅅ..."


"내 말을 듣고 있나? big boss."


"05..10,6..55...대한민국, 육군...특ㅅ..사..령부..중,위.."


"이런. 아직도 그때 일을 못 잊은 건가?"




정신을 잃지 않으려 기를 쓰고 있지만, 그의 관등성명은 오류가 있었다. 아마 유시진의 의식은 중위 시절 그 날로 완전히 회귀한 게 아닐까. 다이아몬드 3개. 그의 견장을 의미있게 쓰다듬어 내린 아구스가 도통 눈길을 떼지 않는다. 타인의 손길이 닿자, 시진은 눈에 띄게 긴장한 듯 호흡이 불안정해졌다. 그러면서도 눈을 최대한 깜빡이고 산소를 공급받으려 노력하는 기색이다.



아구스는 무릎을 굽혀 그와 눈높이를 맞춘다. 많은 것이 변했지만, 정작 시진의 외모는 변한 것이 없었다. 혹독한 태양빛 아래 피부를 쏘이고 흙먼지를 탔으면서 여전히 얼굴이 희었다. 빛을 받으면 연갈빛으로 빛나는 맑은 눈동자와 도톰한 입술까지. 벌어진 입술 새로 찾아들면 얼마나 빼곡한 속눈썹이 떨려댔던가.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다. 아구스는 누구보다 강하고 아름다우며, 총명한 동양인 청년을 애정했었다.




"떠는 건가? 재회가 감격스러워서?"


"헛소리..그만하자...좀,"


"아니면 그때의 일이 떠올라서?"




같잖은 소리 집어치우라는 듯, 가까스로 웃어 보이던 시진이었다. '그때'를 언급하자 인상이 눈에띄게 달라진다. 맞춰지지 않는 초점을 잡으려 안간힘을 쓰며 눈동자를 움직인다. 아구스는 눈 속에 자리한 화마와 분진을, 역시 알고 있다.



당시 구출 작전에서 유시진 중위를 포함한 총2명을 구해내는 데 성공했으나, 저격으로 인해 사망자가 발생했다. 눈앞에서 존경하는 선임이자 팀장을 잃은 유시진 중위는 한동안 큰 실의에 빠졌다. 진심으로 그를 사랑했고 영원을 바랐지만, 결국 시진은 매몰차게 곁을 떠났다. 아구스의 얼굴을 보면 그 날의 참상이 잊혀지지 않는단 이유였다. 두 사람은 추모식에서 이별했다. 그 후로 많은 것이 변했다. 





"그런 표정으로 보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너무..."


"당신. 대체....왜..다시,"


"애처롭지 않나? 키스해달라는 것 같잖아."


"..이런, 더러운..짓ㅇ...!!!!"


"각성이 필요한 순간이군."





금방이라도 키스할 듯 다가갔으나 돌아온 건 입에서 내뱉은 핏덩이였다. 얼굴에 튄 것을 손수건으로 닦아낸다. 아구스는 머리 위로 묶여있는 손을 하나씩, 찬찬히 풀어주었다. 무릎 꿇려있던 시진이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사지에 힘이 하나도 남아있지 못할 테니 당연하다. 그는 시진의 피투성이 팔목을 움켜쥐고 걸음을 내딛는다. 먼지와 잔해 투성이 바닥에 군복이 이리저리 쓸렸다. 시진의 몸뚱어리가 지나간 길마다 군화 자국과 핏자국이 뒤섞인다. 



아구스는 허름한 침대가 놓인 구석에 가기까지 휘파람을 멈추지 않았다. 그동안 시진은 간신히 두어 번, 발을 놀린 게 다였다. 약물 투여로 인해 저항불능 상태일 거라고 예상했으리라. 뭍으로 뽑인 수초처럼 맥아리 없는 몸. 저보다 한참 작고 마른 시진을 침대 위에 짐짝처럼 던져 놓는다. 매트리스 반동과 함께 먼지가 포화처럼 피었다. 쿨럭대며 기침하는 그의 위로 올라타서, 슈트 재킷을 느리게 벗었다.



갈색 눈동자. 퍽 수줍었던 잠자리에서나 볼 수 있던 순한 눈매.

단지 그것을 원했다.




"왜 하필 우르크지? 시진....이런 걸 원치 않았다면,"


"하아,씨..저리..꺼,져.."


"넌 다시 내 눈에 띄지 말았어야 했어."




어제까지 다정한 연인에게 하는 것처럼 뺨으로 찾아든다. 아구스가 가볍게 키스하려 했을 때 사력을 다해 겨우 고개를 틀어낸 참이었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몸으로 언제까지 저항할 수 있을까? 낮게 웃어버린 그가 품속에서 손바닥 크기의 나이프를 꺼냈다. 시진의 솜털 하나까지 모조리 훑고 기억하겠다는 듯 집요한 눈빛이었다. 칼끝이 군복 상의와 벨트를 세로로 그어내리기 시작했다. 드득, 득- 억지로 뜯겨나가다시피 하는 그 소리가, 시진에겐 총성보다 잔인했다.



안에 받쳐 입은 런닝을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애써 의연해지려 노력하는 시진의 표정. 그게 몸 안 박동을 부추긴다. 그는 런닝까지 찢어버리는 대신, 밑자락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물론 나이프를 위로 들어쥔 채라 조금이라도 손목을 돌려 방향을 바꾸었다간 맨 살갗이 베이거나 찔릴 수 있는 상황이다. 




"자. 한 번 솔직하게 말해봐. 내가 그리웠나?"


"내가..전에 말...하지 않았..나?"


"한 마디. 한마디만 하면 돼."


"piss off."




굵직한 손가락이 목울대를 감싼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진상을 파악하기까지 몇 초의 시간이 필요했다. 한 손아귀에 목줄기를 움킨 아구스가 엄청난 악력을 행사했다. 설골이 부러져서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제대로 발버둥도 치지 못하고, 시진은 극한의 공포를 경험했다. 잔뜩 확장된 동공 속으로 남자의 얼굴이다. 남자는 깨진 것을 다시 붙여보려 안간힘인 표정이었다.


허-어ㄱ─흑,으...입만 벙끗거리던 시진의 눈가로 눈물이 맺혀 흘렀다. 그것은 다분히 생리적인 현상이었으나, 아구스는 대단한 수확이라도 거둔양 표정이 바뀌었다. 아랫입술에 입맞춰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시진은 경황이 없어보인다. 어깨너머 허공을 무섭도록 응시하며 살기 위해 노력중이었다. 숨을 조금이라도 얻으려 벌어진 입술 틈새로, 아구스가 혀를 집어넣는다.



"시진. 많은 게 변했어."



비로소 목 조르던 힘을 늦추고 말했다. 음절이 만들어질 때마다 입술과 치열이 수도 없이 부딪는다. 전신에 소름이 돋으면서, 시진은 파르르 떨던 눈을 감았다. 



"난 이제 머리를 기를 수도 있고,"



닫아버린 의식. 흠뻑 젖은 눈두덩 위로 콧날이 얹힌다. 

아구스는 군복 바지에 손을 넣고 있다.



"널 다시 가질 수도 있지."










모른다..다 몰라 시벌..개쩌러..ㅠ......

아구스시진 예전에 사귀다 구출작전 이후에 헤어진 설정...

진짜 웃긴 것은 [송즁기 고문씬]이 검색어 자동완성이 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만 그런 생각한 게 아니었네. 


이 커플 이름좀 줄여부를거 없나 아우구스투스랑 아구몬생각나 ㅋㅋㅋㅋ

아진? 굿진? 굿진 괜차는 듯...(아무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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