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사람 더 몰리기 전에 나왔어야 했다고, 강재는 아주 싫은 표정을 했다. 구정을 앞둔 주말은 쇼핑장소 어디를 가도 붐빈다는 걸 전혀 모르는 걸까. 카트를 끌면서 묵묵부답으로 일관이다. 정환은 옆에서 누가 투덜대건 핀잔을 주건 개의치 않고 진열대의 놓인 와인을 꼼꼼하게 살핀다. 라벨을 자세히 읽는데, 더는 못참겠다는 듯 팔뚝을 움켜쥔다.



"야 박정환. 듣고는 있냐?"


"충분히."


"사람 많으면 질색인 거 알면서, 이런 시장바닥 같은 분위기에서 선물을 골라야겠냐. 응?"


"그러니까 진작 준비했으면 좀 좋아. 골프 치러 다니고 술 마시러 다닐 시간에."



무심한 듯 정곡을 찔렀다. 분해서 씩씩대는 강재가 사실 할 말이 없다는 걸 간파했으니 말이다. 어지간해선 만족하는 법 없는 총장님 새해 선물 고르겠다고 하루 종일 수선피우던 남자가 엄청 게으르단 것을. 픽 웃고 와인병을 내려놓자 강재는 뒤도 안 돌아보고 양주 코너를 향해 걸어가 버린다.

매번 지겹게 보는 슈트차림 말고, 회색 패딩 조끼에 트레이닝 팬츠. 그럼에도 포기못한 포마드 헤어는 어쩌면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아닐까. 



느릿하게 카트를 밀며 쫓아간다. 선물 고르는 안목 젬병이란 건 스스로 알기 때문에 언제나 정환의 눈을 빌리면서, 강재는 마치 저 혼자 충분히 고를 수 있다는 듯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이것저것 살피는 시늉이었다. 




"괜한 고집 부리지 말지. 나중에 환불이니 교환이니 귀찮게 할 거면."


"야 너, 이...!"


"술병은 내려놓고 화냅시다. 치겠네 사람."


"...그래. 잘난 니가 골라라. 빨리 고르고 가자."




강재는 머리 위로 쑥 다가온 팔을 노려보며 중얼댄다. 주변 사람들 의식하느라 살살 긁는 도발에도 크게 화는 못내고 눌러 참는 게 분명했다. 그놈의 남의 시선, 엄청나게 신경쓰는 조강재가 사실 따라서 챙겨 신고 온 운동화가 같은 디자인이라는 걸 알고 있다. 별로 어렵지 않게 양주 포장세트를 고르고, 발치를 흘끗 내려본 정환이 입꼬리를 올린다. 시선을 쫓던 강재가 당황하며 뒷걸음질쳤다. 순식간에 얼굴이 벌개진 게 우습다. 들켜서 창피해할 거면, 저지르지나 말지. 


새 제품을 내어 온 직원에게 물건을 건네받았다. 카트에 실으면서 둘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마치 생판 모르는 사람처럼, 정환의 멀찍이서 데면데면하게 구는 몸짓이다. 뒤를 돌아보고 '아 빨리.' 이런 메시지를 담아 고개를 까닥이자 결국 종종걸음으로 다가온다. 복잡하게 늘어선 진열대 사이를, 정환은 잘도 카트를 몰았다.

 



"다 샀지. 빨리 가자 힘들다. 차 몇층에 대ㄴ..,"


"아직."


"왜 또!"


"콘돔."


"......ㅁ..뭐?"



복판에 우뚝 멈춰선 강재 덕에 카트 바퀴도 느려진다. 어디 한 구석 맞은 것처럼 멍해진 강재를, 정환이야말로 새삼스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며칠 전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거 손수 포장까지 벗긴 사람이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다시 앞서 걸으면, 눈썹을 팔(八)자로 잔뜩 구긴 강재가 뒤늦게 쿵쾅대면서 쫓아와 팔목을 잡아챈다.




"너 미쳤냐? 이게..."


"없으면 안 하는 건 그쪽 아닌가? 이게 무슨 모순이야."


"그걸 왜 여기서!"


"온 김에."


"나중에 사. 편의점에서 사든가..씨.."


"길거리에 차 세우고 다녀오는 게 더 귀찮지 않나? 어차피 사오는 사람은 난데."




이것도 일리가 있는 말이지. 곧 죽어도 정환에게 그 심부름을 시키는 강재니까 말이다. 서로 잡고 잡히는 광경. 이번엔 정환의 턴이다. 안 가겠다고 버티는 강재의 소매를 꽉 쥐고 걷는다. 갈 거면 너 혼자 가라며 필사적으로 버티는 건, 그러니까 남자 둘이 카트 하나 들고 나란히 서서 콘돔 사는 그림 자체가 견딜 수 없단 평소 지론을 따른 거다. 




"야. 왜 굳이 지금..!!"


"집 가서 당장 써야하는데. 그럼."


"……."


"그냥 할래? 그쪽만 원하면. 얼마든지."




때마침 한산한 패트 음료 진열대. 한발짝 다가선 덕에 그림자가 진다. 지금부터 약 30여분 뒤. 그러니까 집 현관문 열자마자 '그걸'하겠다는 의향을 내비쳤으니 말문이 막힌다.

그걸 잘하고 못하고, 능숙하고 미숙하고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순수하게 '좋아하는' 애호가 = 조강재. 이건 정환의 머릿속에서 평생 지워지지 않을 명제였다. 처음엔 뭐가 좋다는지 모르겠다고 한사코 거부하다가 어느샌가부터 꽤 적극적으로 임한다는 걸. 


물론 본인은 곧죽어도 아니라 강조하지만. 때로는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할 때가 있는 거지. 꼭 지금처럼. 




"눈이 반짝이네."


"내, 내가 언제. 언제!"


"그래서 안 하게?"


"이...이...ㅅ...소,손...어디에.."


"미리 감 좀 익히는 중."




다가든 정환이 대뜸 엉덩이를 세게 움켜쥔다. 강재가 턱을 덜덜 떨면서 주변을 살폈다. 아악. 아프고 놀라서 그나마도 작게 비명지르자 재미가 더해졌다. 진열대 쪽으로 주춤주춤 밀려서 떨고 있는 조강재. 지하철 치한에게 당하는 듯 겁에 질린 남자가 단 둘이 옷 벗고 뒹굴 때 어떻게 돌변하는지 이미 알고도 남는다. 



"알..았으니까...야 정ㅎ..환아."


"걱정이네 그쪽. 벌써 섰을까봐."



엉덩이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건 아닐까. 죽어라 꼬집던 손이 뒤늦게 떨어져 나간다. 더럽게 그 손 그대로 뻗어 코끝을 튕긴 놈이 아무일 없다는 듯 앞서 걸어나간다. 아직도 엉덩짝에 놈의 손모가지가 붙어있는 것 같다.





약간 짝사랑st 매달리는 강재로 향설림이랑 풀던 설정인데..

일단 프롤정도. 희희 

화양련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