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잡았군."



한치만 모자랐다면 녀석의 발목을 잡는 데 실패했을 것이다. 몽지는 지붕 위로 날아오르려던 비류를 잡아 내리고는 이제 숨 좀 돌리자며 타이른 차였다. 이미 지붕 위로 눈이 많이 쌓였고, 그럼에도 그치지 않는 중이라 합을 더 겨루기엔 좋은 때가 아니다.

불퉁하게 입을 내밀고 눈치 보던 비류는 마음을 돌리기로 한 것인지, 잠자코 몽지의 손길에 따랐다. 암막暗漠한 지붕 위. 흰 눈이 은빛 주단紬緞처럼 드리웠다.



"네 고집 때문에 오십팔 합을 더 겨뤘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은가?"


"몰라."


"그런 모호한 답은 좋은 태도라고 볼 수 없다."


"..싫어."


"그 까닭은?"


"내가 못 이겼으니까."



정말 불통不通도 이런 불통이 또 있을 수 없군. 터덜터덜 걷고 있는 비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채로 향했으나, 비류는 그 손길을 재빨리 쳐내고 먼저 몸을 놀린다. 자신은 엄연히 이곳의 객客이요, 몽지는 금위군 통령에 오른 고관高官이니 따지고 보면 신분의 격차가 존재했다. 그럼에도 제집처럼 문을 박차고 들어가 원탁 위에 걸터앉아 다리를 놀리는 모습이다. 고개를 내저은 몽지는 혹여 아랫것들이 이 결례를 보고 수군댈까 싶어 얼른 문을 닫았다.


좋은 차를 들여와 담소도 나누고 짧게나마 시간을 보내려던 것인데, 어쩐지 비류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하기사 이리 처소에 몸을 들이는 데에도 수 달의 시간이 걸렸다. 권법을 겨뤄보자는 이유가 아니었다면 애초 이곳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을 것이라.


녕국후부에서의 강렬한 첫 만남 이후, 비류는 몽지를 끊임없이 주시하는가 하면 경계를 내비치기도 했다. 이기지 못한 상대를 향한 호기심 또는 동경. 그리고 무인武人으로서의 패기 역시 한 몫을 했으리라. 몽지는 천진한 눈매의 소년이 내뿜는 기운이 싫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오랜만에 느끼는 생기에 매료당한 것일지도 몰랐다.



"책상 위에 앉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이리 와."


"싫어."


"종주 앞에서도 그리 불복하는가?"



손수 비단 방석을 권했으나 고집스레 고개를 내젓는다. 종주 이야기가 나오자 눈을 크게 뜨고 치잇- 입술을 씹으며 탐탁지 않아 하는 게 보였다. 강좌맹 종주 매장소의 말이라면 거스르는 일 없이 유순하기만 한데, 그 외에는 도무지 통제할 이가 없었다. 예법과 격식에 얽매임 없으니 훗날 그의 강점이자 약점이 될 것이다. 혀를 찬 몽지는 곁에 놓인 접시를 바라보았다. 이젠 저 이 다루는 법을 어느 정도 간파한 까닭이다.


몽지가 탐스러운 복숭아 하나를 쥐고 던지자, 여태 딴청 피우던 비류는 날쌔게도 그것을 받아냈다. 빛깔이 곱고 윤기가 흐르는 것이 누가 보더라도 맛있어 보였다. 단지 쥐기만 했는데 달콤한 향내가 퍼지는 탓에, 비류의 뺨은 복숭아마냥 혈색이 돌았다.

 


"크기도 크고 향이 뛰어나 들인 것이다. 이쪽으로 오면 두 개 더 주지."


"……."


"그래그래. 더 먹었다는 건 비밀로 해주마."



제 손 크기만 한 복숭아를 받아들고 도륵도륵 눈을 굴리던 비류였다. 분명 매장소에게 꾸지람을 들을까 눈치를 본 것이리라. 몽지의 답이 떨어지자마자 복숭아 과육을 한 움큼 깨물고 곁에 다가든다. 둥그런 복숭아 몸체를 타고 과즙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눈을 내리깐 몽지가 한참동안 그것을 바라본다. 그는 허겁지겁 복숭아를 베어먹는 비류에게 약속대로 큼지막한 복숭아를 두 개 더 건네주었다. 먹으면서도 그걸 받기 위해 손을 뻗는 걸 보니 이렇게 얌전할 수 있는가 싶었다. 



"맛이 좋지?"


"..맛 없어. 랑야산에서 먹던 것 보다."


"네가 준 신 열매보단 나을 거다."


"아냐."



아니긴. 당시엔 이게 무슨 호의인가 싶어 기쁜 마음으로 받아먹었으나, 정말 덜 익은 열매의 신맛에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나중에야 친해지기 위한 비류만의 방식이라 임수에게 귀띔을 들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영 말썽꾸러기로만 각인되었을 것이다.


맛이 없다면서도 벌써 봉숭아 한 개를 해치워 버린 비류.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몽지는 앞에 주자注子를 들이고 잔에 술을 채운다. 술은 즐기는 편이 아니나, 오늘처럼 소리 없는 눈이 쌓이는 날이면 괜스레 적적한 마음이 깊어져 찾게 되었다. 두 번 째 복숭아를 막 베어먹던 비류는 빤히 그 손놀림을 쫓으며 얼굴과 번갈아 보았다. 



"왜. 너도 마시겠느냐?"


"……."


"아니지. 이렇게 어린 녀석에게 술을 줬다가 무슨 원망을....,"


"줘!"




단숨에 술잔을 빼앗아 간 손은 끈적한 복숭아 과즙이 묻어난다. 입에 복숭아를 문 채 양손으로 술잔을 받쳐 든 비류. 울망한 눈으로 어서 술을 달라고 조르는 모습에 실소한다. 몽지는 옅게 한숨을 쉬고 잔에 극소량 술을 채워 주었다.



"조금만 마셔야 한다. 단시간에 과음하게 되면,"


"더!"


"...정말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군."



눈 깜짝할 새에 잔을 비우고 다시. 코앞까지 잔을 내민 녀석을 감당할 수 있을까.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던 몽지는 마지 못해 그만큼의 양을 다시 채웠다. 그러는가 싶더니, 비류는 말릴 새도 없이 주자를 빼앗아 들고 제 입에 기울이는 것이었다.





+

14화까지 본 이 시점. 정왕에 대차게 치여 일단 정왕종주를 품으려 하나..

그 전에 비류몽지비류가 넘 귀여워서 짧게. 희희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너무 뻔하다. 몽지가 먼저 수작걸다가 비류한테 된통 당햇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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